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영화




Eternal sunshine 이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까지 건드릴 수 있었던 것은
너와 나 사이에 있던 감정이 결코 그냥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서, 여러가지 조건에 의하여, 그렇게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너와 나는 다른 상황에서 만났어도 그래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었다고, 그 통속적인 이야기를 세련되고도 아름답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제목도 정말 천재적이기 그지없다.
- 티끌하나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정말 이게 최선의 번역인가?)
- 나를 다 지워도 영원한 햇살처럼 남아있을 너와의 관계, 너와의 사랑. 뭐 이런게 너무 영화적인거지.




뭐 그냥 그렇다고.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서적




제목 자체가 주는 매혹감에 이끌려서 구매하게 된 책
(사실은 예스24에서 제공해주는 굿즈에도 좀 끌린게 사실..)

반려묘와 많은 식물들과 함께사는 40대 비혼의 여성이 작가이다.
자신의 삶의 지향과 맞닿아있는 여러 그림책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소개해주는 에세이집이다.
솔직히 무슨 엄청난 깨달음과 울림을 주는 글이거나 하지는 않은데
전반적으로 심심한 듯 예쁘게 마음을 건드리는 글들이다.
표지와 중간중간 작가가 그린듯한 그림들도 참으로 예쁘니 관심이 간다면 구매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나 역시 고양이를 기르며 채식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뒷 부분으로 갈수록 더욱 공감가는 글들이 많았다.


p138
"살구가 살던 살구나무 앞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그 정자는 마을의 흡연자들이 공공연히 모여드는 곳이다. 길 건너 구청 흡연 장소를 놔두고도 자신의 집 앞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 곳에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고 쓰레기를 버린다. 화단에서 사방으로 눈을 돌리면 구역별로 네 개의 쓰레기장이 있다. 그곳에는 매일 몇 개의 통에 음식물 쓰레기와 소가용 쓰레기가 가득 차고 매주 목요일이면 산더미 같은 재활용 쓰레기가 쌓인다. 그 밤 나는 묻고 싶었다. 이곳에서 가장 해로운 존재는 누구인지. 고양이가 끼치는 해악이란 사실 인간의 그것에 비하면 얼마나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인지.

인간만 사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자꾸 상처를 받는다. 반복되는 상처로 내상이 깊어갈수록 점점 인간이 싫어지려 한다."


p157
"책장을 덮고 나면 알게 된다. 구멍을 만드는 소년은 사실 우리가 버린 어떤 마음이라는 것을.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저 밑바닥으로 추락해 버렸고 우리는 그것을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살아간다.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가 쉽게 내던지고 외면했던 것들이 있다. 약한 것, 다른 것, 느린 것, 돈이 되지 않는 것, 불편한 것, 나누는 것. 그렇게 뚫린 크고 작은 구멍들이 이제는 거대한 허공처럼 우리가 설 땅을 모두 잠식해 버렸다. 끝내 우리도 함께 떨어져 버리고 말 구멍들을 우리는 계속 만들고 있다."


p187~189

"의식주의 과정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지 않던 때, 아이들은 제 아비의 손에 잡힌 들짐승으로 어미가 요리를 하고 옷을 짓는 모습을 보며 자랐을 것이다. 자신의 삶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눈으로 낱낱이 보며 성장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부모들이 그랬듯 사냥에 나선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숲과 강의 신령이 사슴을 허락해 주기를 바라는 인간에게 사냥은 정복이나 성취가 아니다. 오직 형제의 육신을 빌어 가족의 목숨을 이어가는 숭고한 일이다. 이 이기적인 행위 속에는 약자를 해치고 싶지 않다는 이타적인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시베리아의 사슴 사냥꾼과 이 시대의 채식주의자는 연결될 수 있다. 둘에게는 모두 사슴을 형제라 부르는 마음이 있다. 한쪽에서는 죽은 사슴의 뼈 하나도 상하지 않게 가죽을 벗기고 살을 바르며 영혼의 안식을 빈다. 다른 한쪽에서는 더 이상 육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모두 동물에게 인간이 삶을 빚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사냥꾼의 마음을 잃어버린 인간은 고기 한 덩어리를 먹기 위해 죄책감 없이 병아리를 믹서기에 갈고, 어린 돼지의 생니와 꼬리를 맨손으로 잡아 뜯고, 병든 닭을 시멘트 바닥에 패대기 쳐 죽이고, 기계에 몸이 고정된 암소의 항문과 자궁에 팔을 집어넣어 수정을 한다. 고기가 되기 위해 키워지는 모든 가축은 제 수명의 1/5도 살지 못한다. 그마저도 항생제에 취한 채로 좁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먹기 좋을 만큼의 크고 연한 살덩이를 빠르게 불린 뒤에 잔인하게, 끔찍하게 도축된다. 모두 오직 쾌락을 위해 자행되는 일들이다. 우리가 체념하듯 묵인하고 동의한 육식의 과정 속에서 동물들의 고통은 철저히 외면된다.
(중략)

나는 육식보다 육식을 위해 허용된 인간의 폭력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일기 -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새벽 1시 23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내 머리를 내려치고 있다.

지각.
오전은 비몽사몽.
업무의 집중도는 낮음.
목표했던 바의 80% 정도만 달성.
귀가 후에도 피곤하여 비몽사몽.
뭘했는지 모르게 시간 낭비.
늦게 취침.

다시 반복.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언제부터 이랬을까?
과거부터 늘 이랬던 것 같다. 아주 어릴때에도. 대학때에도. 고딩때에도. 중딩때에도.

그렇지만 어영부영 살아왔다. 
어영부영 대충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아왔고 그래서 더욱 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다시 한번 되뇌인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삶이 바뀌기를 변하면서 무엇하나 바꾸지 않는 한심한 인간들이 많다. 나는 그 중 하나다. 

이제 좀 바뀌고 싶다. 바뀌어야 할 때다.

지각과 오전 비몽사몽을 좀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충분한 수면과 깔끔한 하루의 시작이 필요하다.

일단 거기에서부터 시작.

일기도 꾸준히 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필요를 느끼니 이글루스도 참 오랜만이네.

이글루스에 들어오기까지- 내 인터넷 사용 행태를 보았을때 나의 성향이 얼핏 보인다.
 1. 여기까지만- 이라며 핸드폰게임을 한시간 넘게 한다.
 2. 컴퓨터를 켠 이후 이메일을 확인하고 페북을 보며 뉴스를 읽음. 그 외에도 중요하지 않은 몇개(예를 들어 만세력)를 확인하고, 그 외에 전혀 궁금하지 않던 검색어도 몇개 침(예를 들어 구남친 관련 키워드).
 3.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는거다.

진짜 해야하는 것, 이 바로 앞에 있는데, 그걸 하려니 뭔가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어서(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내 마음을 좀 더 들여다봐야) 자꾸 빙빙 돌며 주변부의 쓸데없는 것들로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놉!

이제그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강변살다 유치해 일상


나이든 걸 이렇게 느끼는구나
대학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에 강변살다 만화가 처음 네이버에서 올라와서 강변이라는 여자 캐릭터의 심리가 완전 나야나 하면서 초열광 했었는데 ..
그렇게 몇 년을 걍 보내다가
얼마 전에 보니 아직도 연재 중이길래 (심지어 전개도 별로 안 됨)
다시 보니까 모든 인물들의 감정선, 대사 한 줄 한 줄이 초 유치 .....
무슨 마음인지 알겠고, 알겠는데 전혀 다시 경험하거 싶지 않은.
특히 이번 연애는 잘 해보겠다고 차곡차곡을 다짐하는 강변이가 너무나 ㅋㅋㅋㅋ 부질없고 ㅋㅋㅋㅋ 자신의 그 심정에 도취된 느낌의 오글거림을 이루 말할 수 없고 ㅋㅋㅋㅋ

하면서 큭큭 거리다가
나는 뭔가 하는 생각에 현타가 왔다.

저런 것이 유치하다 생각될 수 있는
소중한 이를 만났으면
소중하게 대접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화가 나서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염소가 된 인간(Goat Man), 토머스 트웨이츠 서적




페이스북을 하다가 카드뉴스로 된 이 책 소개를 본 적이 있다.
그 후로 두어번 서점에 갈 때마다 눈에 띄였고, 결국 구매하였다.

보바리 부인에서의 문제의식과 연결되는 측면이 없잖아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욕망이 만든 '보바리 부인'이라는 비극이 있다면,
우리 토머스 트웨이츠(이하, '또라이'라고 합니다)는 그 후회와 욕망이 거세된, 그래서 좀 마음 편히 살고 싶은 그런 생을 살길 원했고, 아무래도 그런 생은 인간으로서는 불가하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코끼리나 됐으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을 했는데,
알고보니 코끼리는 인간 버금가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욕망이 있댄다.
그러니까 코끼리는 '걱정'없는 삶을 사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코끼리 사는 삶도 빡세대)

어째쓰까 하다가 점성술사도 만나고 하다가 염소가 되기로 함.

그래서 염소처럼 사족보행 하기 위해서 의수족 전문가도 만나고, 풀을 씹어 먹기 위해서 염소 해부해서 장기도 쳐다보고 뭘 별의별짓을 다 한다.
별의별짓 후 정말로 알프스 가서 염소농장 가서 염소들 사이에서 사족보행도 하고 풀도 뜯어먹고 하는데 ..
염소농장 주인이 그런다.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으면 나처럼 알프스 산 꼭대기 올라와서 살믄 되는데 뭣하러 염소까지 되려 그러남?"

여기서 우린 아래와 같은 논리적 추론을 할 수 있다.

염소가 되는 건 존나 빡세다. 이족보행하는 우리가 사족보행 해야되고, 소화 못 시키는 풀도 씹어먹어야하고, 그거 별 탈 없이 소화시키려다가 연구 취소될뻔도 할 정도, 막상 어떻게 사족보행을 해보아도 너무나 힘이 들고, 뭐 그런거다.

그런데 염소가 되는 것 = 시골에서 유유자적 사는 것
애초에 또라이가 염원했던 걱정없는 삶, 그런 것이 시골에서 유유자적 알프스 염소목장주처럼 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골에서 유유자적 사는 것 역시 존나 빡세다.

우리는 아 사는게 넘나 힘들어 귀농이나 할까, 쉽게 얘기하지만, 우리가 도시에서의 경쟁에 찌들고 걱정에 찌들고 관계에 찌들고 뭐 그런 삶이 너무나 빡세고 힘들어서 그런 모든 잡념들을 떨쳐내고 별 생각 없이 살고 싶다고 귀농을 하는 건 그냥 그렇게 쉽게 시골로 이사가서 집 짓고 산다고 쨘 하고 나타나는게 아닌 것이었다.
적어도 또라이가 염소가 되려고 했던 그 많은 노력들 정도는 해야지 그나마 조금이나마 애초에 목적했던 것에 근접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뭐 그 정도는 되어야.

"그러니까 선택지는 있다. 염소까지 안되도 인간으로 살면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모든 잡념에서 벗어날 방법은 있다.
그러나 존나 빡세다. 쉽게 생각하지 말아라."

이 정도가 결론이자 교훈이겠다.

물론 이 책은 결론, 교훈 이런거 생각안하면서 읽어도 증말 재밌다. 읽는 내내 킬킬 웃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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